달력에서 열흘이 사라진 적이 있습니다.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이 10월 15일이 된 것입니다. 오류가 아니라 쌓인 오차를 한 번에 털어 내려는 결정이었고, 그 결정을 받아들이는 시점은 나라마다 달랐습니다. 조선은 1895년 조령으로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삼으면서 같은 달력으로 들어왔습니다.
핵심 달력 개혁은 천문 계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누가 시간의 기준을 정하느냐는 정치의 문제였고, 그래서 같은 달력을 받아들인 해가 나라마다 다릅니다.
기억할 점
- 율리우스력은 1년을 실제보다 조금 길게 잡아 오차가 쌓였고, 1582년 그레고리력은 열흘을 지우고 윤년 규칙을 고쳐 이를 바로잡았습니다.
- 가톨릭 국가들은 1582년에, 영국은 1752년에, 일본은 1873년에, 러시아는 1918년에 새 달력을 받아들였습니다.
- 조선은 1895년 9월 9일 조령으로 태양력을 채택해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삼았고, 연호를 건양으로 정했습니다.
열흘을 지운 이유는 쌓인 오차였습니다
율리우스력은 4년에 한 번 윤년을 두어 1년을 365.25일로 계산했습니다. 실제 1년은 이보다 약 11분 짧습니다. 작은 차이가 쌓이면서 16세기에는 실제 춘분이 교회가 기준으로 삼던 3월 21일보다 약 열흘 이른 3월 11일 무렵에 왔습니다. 부활절 날짜를 춘분에 맞춰 정하던 교회로서는 그냥 둘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두 가지를 바꿨습니다. 그해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일로 정해 쌓인 열흘을 한 번에 지웠고, 100으로 나뉘는 해는 윤년에서 빼되 400으로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두는 규칙을 더해 앞으로의 오차를 줄였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음양력 변환 안내에도 이 날짜 건너뜀이 명시돼 있고, 우리나라의 현행 공식 역법이 그레고리력이라는 점은 천문법 제5조에 있습니다.
출처: 한국천문연구원 생활천문관, 음양력 변환 계산 안내 (1582년 날짜 건너뜀과 천문법 제5조) · 미국 해군천문대, 달력 개요 (춘분 기준과 그레고리력 윤년 규칙)
같은 달력을 나라마다 다른 해에 받아들였습니다
개혁은 교황의 이름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스파냐·포르투갈 같은 가톨릭 국가는 곧바로 따랐지만 개신교 국가와 정교회 국가는 오래 버텼습니다. 영국과 그 식민지는 1752년에야 바꾸면서 9월 2일 다음 날을 9월 14일로 삼아 11일을 지웠습니다. 1700년을 윤년으로 한 번 더 지냈기 때문에 지울 날이 하루 늘어난 것입니다. 일본은 1873년 1월 1일부터, 러시아는 1918년에 새 달력을 썼고, 러시아는 13일을 지워야 했습니다.
받아들이는 해가 늦을수록 지워야 할 날이 늘어납니다. 어떤 나라가 언제 바꿨는지는 그 나라가 어느 종교와 어느 세력의 시간 기준을 따르기로 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출처: 스코틀랜드 국립기록원, 1752년 그레고리력 전환과 11일 조정 · 일본 국립천문대 역계산실, 1873년 태양력 시행 · 러시아 대통령도서관, 1918년 그레고리력 전환 법령
조선은 1895년 조령으로 태양력에 들어왔습니다
고종실록 32년(1895) 9월 9일 기사에는 "정삭을 고쳐 태양력을 쓰되, 개국 504년 11월 17일을 505년 1월 1일로 삼으라"는 조령이 실려 있습니다. 정삭은 한 해의 시작을 어느 달로 둘지 정하는 역법의 기준을 말합니다. 이 조령에 따라 음력 1895년 11월 16일 다음 날이 양력 1896년 1월 1일이 됐습니다. 날을 지운 것이 아니라 날짜를 부르는 기준을 바꾼 것입니다.
태양력 시행과 함께 1896년부터 새 연호 건양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은 을미사변 뒤 일본과 갑오정권이 칭제건원과 태양력 사용을 추진하던 정치 상황 속에서 나왔습니다. 황제 칭호를 올리는 일은 미뤄졌지만, 새 연호와 태양력은 시행됐습니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고종 32년 9월 9일, 정삭을 고쳐 태양력을 쓰다 (국사편찬위원회) · 우리역사넷 교과서 용어 해설, 건양 (국사편찬위원회)
옛 날짜를 오늘 달력으로 옮길 때 생기는 문제
조선의 기록은 1895년까지 음력이고, 그 이전 날짜를 양력으로 옮기려면 어떤 역법과 환산 원칙을 쓸지 먼저 정해야 합니다. 한글날의 옛 기념일은 그 어려움을 보여 줍니다. 조선어학회는 1931년 무렵 10월 29일을 양력 기념일로 삼았다가, 전문가에게 역법 문제를 문의한 뒤 1934년부터 10월 28일로 바꿨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어학회가 기념일을 정하고 고친 기록입니다. 이 변경을 두 달력 사이의 일반적인 날짜 차이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옛 사건의 양력 날짜를 볼 때는 괄호 안의 환산 기준을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1582년 이전 날짜에 그레고리력을 거슬러 적용한 것을 역산 그레고리력이라고 부릅니다.
달력을 원인과 결과로 읽는 법
해석과 적용
달력 개혁의 원인은 천문 오차였지만, 결과를 결정한 것은 정치였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나온 규칙인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시점이 갈렸고, 조선에서는 달력이 개혁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어떤 기록은 옛 달력으로, 어떤 기록은 새 달력으로 날짜를 적기 때문에, 날짜가 어긋나 보이는 기록을 만나면 먼저 어느 달력인지 묻는 것이 순서입니다.
확인 질문은 세 가지입니다. 이 날짜는 어느 달력으로 적혔는가. 환산했다면 어떤 기준을 썼는가. 달력을 바꾼 주체는 누구이고 그 결정이 어떤 개혁과 함께 왔는가. 이 질문이 있으면 "열흘이 사라졌다"는 말이 오류가 아니라 결정이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메모
- 1582년 달력 개혁 때 건너뛴 날짜는 10일입니다. 두 역법의 같은 날 번호 차이는 1582년 10월부터 1700년 2월까지 10일, 1700년 3월부터 11일, 1800년 3월부터 12일, 1900년 3월부터 2100년 2월까지 13일이며 2100년 3월부터 14일입니다.
- 나라별 도입 연도는 정치체마다 다르며,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시점이 달랐습니다.
근거 메모
확인 책임: 북클립 운영자가 한국천문연구원, 미국 해군천문대, 스코틀랜드 국립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국립국어원, 일본 국립천문대, 러시아 대통령도서관의 공개 자료와 본문의 날짜를 대조했습니다.
한계: 달력 개혁의 큰 흐름을 정리한 글이며, 각국의 세부 도입 과정과 천문학적 계산의 세부는 다루지 않습니다.
확인일: